기사제목 고시영목사의 아프리카 기행문(4)- 사파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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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영목사의 아프리카 기행문(4)- 사파리여행

기사입력 2017.08.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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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 보고와 인문학 강의를 마친 아프리카 선교회 일행은 마지막 일정으로 셀루스 사파리를 택했다. 선교사 가족들과 서울에서 온 일행들 모두 합하면 30여명 넘었다. 1박 2일 여행비는 일인당 500불, 약 15,000 불이나 소요되는 여행이다, 경비는 서울에서 온 일행들이 모두 마련했다. 대단한 선교단체였다.
 탄자니아에는 셀루스라는 사파리 장소가 있다. 셀루스는 전설적인 사냥꾼이다. 헤밍웨이가 1933. 1953년 두 번에 걸쳐 아프리카 사냥을 왔고,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한 번 와서 대단한 사냥을 했지만 셀루스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셀루스는 1917년 1월에 독일군 저격병에 의해 죽었지만 탄자니아 정부는 그를 기념하여 셀루스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정했다. 우리 일행은 바로 그 보호 구역을 방문하는 것이다. 사파리라는 말은 스와질랜드 언어로 여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본래 사파리는 수렵과 탐험을 목표로 하는 여행이다.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견고한 자동차, 안내자, 인부, 무기, 초원에서 잘 수 있는 천막 등은 필수적이다. 본래 여행은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다. 관광이라면 여권과 간단한 옷가지를 준비하면 되겠지만 여행은 모험을 통해 삶을 배우는 것이기에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일행은 선교 센터를 아침 9시경에 출발하였다. 가는 길은 참으로 험했다. 일부는 포장된 길이기는 하지만 도로 폭이 좁아 오는 차와 가는 차가 충돌할 것 같다는 의식 때문에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선교사들은 태연했고 아이들도 무심해서 기쁜 소리만 지르기 일 수였다.
왜 그럴까? 아마 경험의 결과일 것이다. 저들은 늘 경험했고 나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저들은 태연했고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인간은 첫 경험이 불안하지 경험이 축적되면 경험은 힘이 되는 것이리라. 4시간이 지나자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길은 더욱 험했다. 비포장인데다가 도로 곳곳이 움푹 패어 차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나름대로 여행을 통해 나름대로 삶을 배우는 훈련이 되어 있어서 길 주변의 풍경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여자들, 아이들, 간혹 오토바이를 타고 그 황갈색 길을 질주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가 있었다. 여자들의 표정에는 체념에서 오는 편안함이 흐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천진함 속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천진함은 점차 살아질 것이고, 아이들의 호기심은 약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거역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의 호기심이 자신들의 운명과 싸우는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손을 흔들면 답례를 했다. 나는 그들의 손들이 아프리카의 깃발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비포장도로를 다시 2시간 달려 우리 일행은 셀루스 사파리에 도착했다. 장장 6시간의 자동차 여행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은 그 누구도 피곤하다고 투덜대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 사파리를 방문한 사람이 없었고, 앞으로 전개될 또 다른 여행에 대한 기대감들이 그 피곤함을 죽였기 때문이다.
 숙소는 내 일생에 처음 경험해 보는 장소였다. 나무로 지은 막사 비슷한 집이었는데 통나무집이랄까? 물론 안에는 나름대로 필요한 것들이 다 구비되어 있었다. 집과 집 사이가 상당히 떨어져져 있어 홀로 밀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욕들을 하고 우리 일행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나는 음식보다는 밀림의 분위기를 먹었다. 식당 뒤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안내자가 그 강에 악어들이 많다고 익살을 부렸다.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배를 타고 강 상류로 진입했다. 탄자니아에서 제일 큰 강이긴 하지만 완전히 황토색이어서 깨끗한 강만 보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저들은 이 물을 마시기도 하고, 이 물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상류로 가면서 우리는 악어나 하마들을 볼 수가 있었다. 크고 작은 고기들이 강 물 속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어른들은 이미 그런 동물들을 영화 등을 통해 많이 보와 왔기에 비교적 덤덤했지만 아이들은 하마나 악어를 볼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선교사들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이 오지에 온 것이 아니라 부모 때문에 온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나 구원, 축복은 의미가 없다. 인생을 아는 자만이 그리스도가 중요하지 인생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즐거움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더 상류로 올라가니 넓은 모래톱이 있었다. 안내자의 말을 들으면 강 여행의 절정은 이곳에서 황혼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황혼이라는 말에 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황혼을 좋아한다. 내가 황혼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이다. 그들은 일출과 일몰 때 ,태양을 향해 제사를 드렸다. 일출은 시작이요, 일몰은 끝이다. 인간은 일출의 감격을 모른다. 그가 태어날 때의 기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몰은 기억하면서 산다. 인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경건해지고 정직해 진다. 그래서 유언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나는 “ 다 이루었다” 는 그리스도의 일몰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처럼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 갈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처럼 주어진 책임은 다 감당하고 죽고 싶다. 정말 석양은 일품이요, 절품이었다. 이 광경 하나만 보아도 셀루스에 온 보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분주했다. 나는 내 가슴에 그 아름답고, 처연하고, 거룩한 태양의 죽음을 기도하면서 가슴에 담았다.
 강 여행을 한 후, 우리는 식당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했다. 진정한 식사는 음식과 언어의 조합이다. 어쩌면 음식보다는 언어의 맛이 식사를 더 풍요롭게 한다. 강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식당 종업원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여흥을 보여주었다. 춤과 음악,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노래와 춤에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물이 흐르는 것 같은 몸동작, 검은 얼굴 사이로 마치 군대의 행진처럼 질서 있게 드러나는 흰 이빨, 섬뜩하면서도 나를 유혹하는 강렬함이 그들의 얼굴에 녹아 있었다. 자연스러움이 이처럼 위협적임을 처음 느꼈다.
 나는 서목사와 함께 모기장 안에서 밤을 지냈다. 모기장은 추억이면서 불안함이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잠을 잘 때마다 모기장에 신경이 쓰였다. 말라리아 공포증 때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잘 때마다 모기장을 쳐 주셨다. 그 때, 모기장은 어린 나에게는 장난감이었다. 어머니를 부르는 호루라기였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모기장을 통해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 이미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아침 일찍 우리는 셀루스 초원으로 사파리를 떠났다. 넓은 초원에 얼룩말, 퓨마, 코끼리, 다양한 새들, 원숭이들 등등이 유유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자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안내자는 축복받은 사람만이 사자를 볼 수 있다는 농담을 했다. 나도 사자를 보고 싶었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 그 포효하는 장중한 소리를 듣고 싶었다. 영화가 아닌 현실로, 내 눈으로 직접 왕을 보고 싶었다. 나는 왕을 통해 삶을 배우고 싶었다. 사자는 오직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백수의 왕이지만 사냥에 자주 실패한다. 그러나 왕은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냥을 할 때, 전력을 다 한다. 다른 사자들과 협력을 한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협력은 사자의 덕목이다. 사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린다. 먹이를 잡은 후, 내장만 먹고 다른 고기는 남긴다. 사자 때문에 다른 육식동물들은 살아간다. 사자는 불필요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 사자에게는 조심, 치열, 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지혜가 있다. 그래서 백수의 왕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졌다. 우리 앞에 사자의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몸은 호랑이만 못하지만 머리는 과연 왕다웠다. 면류관이라고 할까? 사자는 우리 쪽을 한참 쳐다보더니만 유유하게 자기의 갈 길로 사라졌다. 사자는 자신의 길을 가는 왕이었다. 사파리는 인간의 질서가 아닌 자연의 질서가 숨 쉬는 공간이었다. 초원에 사는 동물들은 본능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난 사파리에서 일어남과 쓰러짐을 보았고 본능으로 살되 질서에 순응하는 삶, 그것이 생존과 행복, 그리고 보람을 얻는 삶의 지혜임을 배웠다.
[교회정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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