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성공이야기(39) - 바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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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야기(39) - 바나바

기사입력 2017.11.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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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모두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부자였다. 레위 사람이지만 물질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예루살렘 교회가 공동체생활을 할 때, 가나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거액의 헌금을 해서 그들을 도왔다. 본명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은 그의 이름을 바나바라고 불렀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주 적절한 이름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성공했다. 그의 꿈은 이방 선교였다, 그래서 바울을 사도들에게 천거해서 동역자로 삼았다. 바울은 이방 선교를 하는 데 적격이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에 여행하는 데 불편이 없었고, 특히 헬라어를 잘 해서 복음 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바나바는 스데반 집사 등 초대교회 교인들을 핍박해서 사도들 눈 밖에 난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와서 사도들을 설득해 선교 동역자로 삼았다.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을 주도하면서 선교 사역에 큰 성공을 거뒀다. 자기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교활동의 성공은 영적 성공이기도 했다. 그의 이방 선교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다. 바나바는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고 특히 사도들이 그를 존경했다. 그래서 바울을 바나바를 보아 사도의 반열로 인정했다. 교인들이 그를 존경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정적으로 그의 성공 여부는 성경이 침묵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으나 그의 성품이 착했고, 물질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아 그의 가정도 훌륭했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그렇다면 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성경은 이 점을 매우 강조한다.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보다도  그가 착한 사람이었음을 먼저 강조했다. 그는 마음이 착했기에 교인들을 박해한 바울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마음이 착했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거액을 헌금할 수 있었다. 마음이 착했기에 1차 선교 여행 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 버린 마가를 다시 재 등용하여 2차 선교여행 때, 동행하려고 했다. 마음이 착했기에 자기보다 유능한 바울을 동역자로 천거했고, 바울과 함께 일했으며, 바울이 명성을 떨쳐도 시기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은 바나바에게 배신자였다. 바나바에 의해서 선교 무대에 등장했지만 바울은 마가를 용서 하지 못해 그와 동행하기를 거부함으로 결국 바나바와 결별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런 바울을 비난하지 않았다.
 둘째,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 충만은 일종의 능력이다. 성령이 충만했기에 그에게 능력이 임했다는 것이다. 그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을 눈여겨보게 되고 그를 선교무대에 등장시킨 것이다. 사람을 볼 줄 아는 통찰력,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바나바는 설득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다소에 칩거해 있는 바울을 찾아가 함께  일하기를 설득했다. 이미 바울은 의기소침한 상태에 처해있었다. 그의 과거가 그를 나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런 바울을 설득해서 결국 예루살렘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바나바는 사도들도 설득했다. 사도들은 바울을 싫어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일에 가담했고, 교인들을 핍박해서 감옥에 보냈기 때문이다. 이런 사도들을 바나바는 설득해서 바울을 받아들이게 했다. 대단한 설득력이다. 이는 성령의 능력이다.
 셋째, 그는 사람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졌다. 그래서 바울을 발탁했고, 선교 사역에 막대한  피해를 준 마가를 재 등용했다. 이는 바울과 비교가 된다. 바울은 일 중심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일, 즉 선교가 먼저였다. 바울은 선교에 불필요한 사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마가로 인해 바나바와 싸운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람을 중시했다. 사람이 먼저고 일은 나중이었다. 좋은 사람, 훈련된 사람, 회개한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바나바의 가치관이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현대인들, 그리스도인들은 능력, 즉 성령 충만을 강조한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품이 착해야 능력도 바로 발휘될 수 있다. 바나바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된 것은 그 마음이 착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마음이 악한 자에게 성령 충만은 있을 수가 없다. 먼저 마음이 착한지를 점거해야 한다. 착한 것이 먼저다. 능력은 그 다음이다. 악한 자에게 능력이 주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이 사회에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생겨나겠는가?
[교회정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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