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성공이야기(41) - 세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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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야기(41) - 세례요한

기사입력 2017.11.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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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요한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다. 성공의 일차적 요소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 즉 생존이다. 그러나 운명적으로 생존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어야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지자들, 주님의 제자들,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숭고한 가치를 위해 사는 사람들, 그들은 죽어야 산다. 죽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세례 요한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살로메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선지자였다. 주님의 길을 에비한 사람이었다. 특이한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예언을 했다. 그의 예언은 두 가지였다. 이제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온다는 것과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시아가 온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언이지만 죄를 회개하라는 예언은 인간에게 절망을 주는 예언이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일반적인 죄만 강조하면서 추상적으로 회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권력자 헤롯왕에게 직접 회개를 요구했다. 당시 헤롯은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았다. 명백한 죄다. 아직 동생은 살아 있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의 지적을 불편하게 생각해서 그를 잡아 감옥에 가뒀다. 그런데 생일잔치 날, 아내의 딸, 살로메가 관능적인 춤을 추자 이에 흥분한 그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살로메에게 했고, 살로메는 세례요한을 죽여 그 목을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였다. 왜 살로메가 그토록 잔인한 요구를 했는가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없다. 어머니를 괴롭히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요구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소설 살로메에서 아주 특이한 해석을 하고 있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사랑해서 수차례 구혼을 했으나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그리했다는 것이다. 소설적 상상력이다. 세례 요한은 죽어야 성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강조함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기들이 기다라던 메시아라고 생각해서 그를 따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제 메시아는 곧 온다고 했고, 자신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자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영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했다. 개인작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그는 성공했다. 주님께서 평한 대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였다.
 그렇다면 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자기의 사명을 알았다는 것이 큰 요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사명이 거기 있다고 파단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영웅시 하고, 심지어 메시아라고 불렀을 때도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가 있었다.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면 착각하기 쉽고, 사람들의 칭찬에 현혹되기 쉽다. 사람들은 무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들의 무지에 속아 스스로 무너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대중에게 속지 않았다.
 둘째,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주님은 아직 대중적인 인기도 없었고, 그리 활동도 많이 하지 않으셨다. 세례요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상승했다.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었고, 주님은 아래로 불 수 있었다. 특히 주님은 친히 세례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구하셨다.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세례 요한이 위요, 주님은 아래였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베풀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거절 했다. 그러나 주님이 강하게 요구하자 마지못해 세례를 베풀었다. 겸손이다.
 셋째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을 운명을 웃으면 받아들였다. 운명은 받아들이던가, 극복하던가 해야 한다. 그 어느 쪽도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날, 현대인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라.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죽을 바에야 세례 요한처럼 죽는 것도 좋지 않는가? 죽음에 대한 이해가 성공을 좌우 한다. 죽음은 인생 최고의 스승이다. 인간은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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