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성공 이야기(44) - 장로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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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이야기(44) - 장로 야고보

기사입력 2017.12.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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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주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출생했지만 그는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정상적으로 태어났다. 그는 주님과 같이 30년을 살았다. 성경을 보면 주님에게는 4명의 남동생과 두 명 이상의 여동생이 있었다. 남동생들이 이름은 명시 되어 있으나 여동생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당시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강조하여 마리아는 주님 외에 어떤 자식들도 낳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야고보와 형제들은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주님을 적대했다. 부모와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주님에 대한 원망이 그런 형태로 나타난 것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3년을 함께 살면서 그들은 주님의 인간적인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우면 실체를 바로 보기가 어렵다. 그들은 주님이 미쳤거나 사탄의 도움으로 기적을 행한다고 믿었다. 야고보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하신 행동 때문이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적어도 야고보는 현장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주님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해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을 대신해서 장남 노릇을 해야 했다. 주님이 부활하자 야고보는 주님을 영접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그의 동생 야고보에게 친히 나타나셨다. 주님은 야고보를 영적 지도자로 세우시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교회에는 사도들이 있었지만 시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지로 흩어졌고, 교회는 야고보가 지키고 있었다. 주님의 동생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그를 교회 지도자로 확고히 세웠다. 야고보의 권위는 예루살렘 공의회 때 발휘되었다. 이방인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정하는 종요한 회의가 열렸다. 이 때, 야고보는 베드로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은 구원의 필수조건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분파보다는 평화를, 율법보다는 영혼을 더 사랑했다. 그는 성경 야고보서를 기록했다. 그는 영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교인들에게도 존경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기에 개인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렇다면 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에게는 특별한 영적 체험이 있었다. 그는 주님의 죽는 모습을 보았고, 부활하시어 특별히 자신에게 나타난 주님도 직접 보았다. 다른 동생들에게는 이런 체험이 없었다. 영적 성공은 단순한 성경 지식만으로는 어렵다. 특별한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는 사도들, 특히 베드로와 협력하여 교회를 섬겼다. 베드로는 수제자였고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었다. 둘 다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충분히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베드로와 경쟁하려고 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했다. 그래서 베드로의 견해를 뒷받침해 주었다. 만약 예루살렘 회의 때, 그가 베드로와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했다면 이방 선교는 불가능했고, 교회는 분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협력하는 자가 성공한다.
 셋째, 그는 약점을 보안하는 중용의 지혜를 갖고 있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이 주장은 진리이지만 바울이 이 진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사람들로 하여금 믿기만 하면 어떤 행동을 해도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자유방임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여 졌다. 그래서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은 바른 행동을 만들어 낸다고 강조하면서 자유방임을 경계했다. 그에게는 약점을 보안하는 지혜가 있었다. 약점을 공격하기 보다는 그 약점을 보완하는 자가 성공한다.
 넷째, 그는 공동체를 사랑했다. 교회가 분열될 수 있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기보다는 교회공동체의 단결과 평화를 더 원했다. 개인의 생각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한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도 무너진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현대인들, 그리스도인들은 남과 협력할 줄을 모른다. 특히 생각이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를 거부 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유익보다는 개인의 유익을 더 탐낸다. 비판을 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며, 약점을 공격하기를 좋아 하면서도 그 약점을 보완하는 지혜를 말하지  않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한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공은 공존의 산물이다. 성공은 개인주의적 이익을 탐내기보다는 공동체의 유익과 평화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작은 성공을 하는 자들은 있으나 큰 성공을 하는 자가 없는 것은 사람들이 평화보다는 분열을, 공동체보다는 자기 자신을, 대안 제시보다는 일방적인 비판만을 하기 때문이다.
[교회정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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