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키케로의 의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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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의무론

기사입력 2019.05.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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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영 목사의 인문학 산책
              2. 키케로의 의무론       
의무론을 쓴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공화정이란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형태를 의미한다. 물론 당시에는 참정권이 제한되어 오늘과 같은 민주적인 공화제는 아니었지만 주변 나리들이 왕정을 정치형태로 삼았는데, 공화제를 주장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는 제정을 꿈꾸던 줄리어스 시저를 반대해서 그를 암살한 부루터스를 지원했고, 시저의 부하인 안토니우스를 비난하다가 결국 안토니우스에 의해 암살을 당했다. 그는 키케로의 두 손을 잘라 전시를 했는데 이는 키케로가 손으로 글을 써서 그를 비난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된다. 초기로마제국을 건설한 동력은 군대, 로마의 도로, 그리고 키케로의 의무론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책은 대단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끼쳤다. 그래서 지금도 이 책은 인문학자들의 필독 독서가 되었고, 서울대학교는 물론 하버드 대학교의 필독 도서로도 추천이 되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책이기도 하고, 영국 신사의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의무론 보다 더 잘 쓰려고 하면 이는 허풍이다, 라고 이 책을 평하기도 했다. 의무론은 키케로가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자연법사상에 근거를 하여 사회 속에서 지녀야 할 인간의 바른 모습을 강조하였고,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기슬하고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한 것은 인문학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기술하는 것은 윤리학이다. 의무론은 윤리학의 정수이다. 이 책은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도덕적 선에 관해서, 둘째 부분은 유익함에 대해서, 셋째 부분은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상충에 대해서, 이렇게 나눌 수가 있다. 그는 도덕적 선을 4가지로 강조하고 있다. 지식, 또는 지혜, 정의, 용기, 인내가 그것이다. 지식이라 함은 진리를 이해하는 덕이고, 정의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덕이며, 용기는 고귀한 것을 행하는 덕이다. 그리고 인내는 관용, 절제, 온유를 만들어 내는 덕이다. 그에 의하면  도덕은 3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 도덕은 양심, 사회적 여론에 근거한 마땅히 지켜야할 행동 준칙이다. 그는 도덕이 사회적 여론에 근거한 다는 점에서 도덕적 기준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 하지만 사회적 여론도 양심을 무시하거나 뛰어 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 우리 현실은 양심을 무시한 사회적 여론이 도덕적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도덕은 강제력은 없지만 개인의 내면적 원리이며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중시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마다 도덕적 기준이 다를 수 있고, 개인 간의 도덕적 기준이 다름에서 오는 인간 상호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도덕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 도덕이 인간 상호간의 갈등을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원리가 하나있다. 키케로는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도덕에 의한 갈등은 공존을 위한 상호 희생이 있어야 해결된다. 이런 상호 희생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셋째, 도덕의 종류는 두 가지, 즉 호네스툼과 데코룸이 있다. 호네스툼은 도덕적 선, 그 자체를 의미하고, 테코룸은 어떤 상황에서 내면적 감정과 행동이 외면적으로 적합한가를 검토하여 행하는 것이다. 일종의 상황 윤리인 셈이다. 인간은 처해진 상황에 의해 감정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과 행동은 외면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아무리 그 상황에서 그 감정과 그 행동이 이해가 된다고 해도 외부적으로 타당성을 가지 않으면 도덕적 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키케로는 인간 행동이 사회에 유익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개인의 도덕적 선이 사회에 악을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공동체 우선주의자이다. 그래서 공화정을 강조한 것이다. 제정은 제왕을  위한 것이지만 공화정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 것이다. 테코룸을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 한 것은 욕망을 이성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성이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고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키케로는 유익함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유익한 것이 선이고 유익함이 있어야 개인은 물론 공동체가 행복해 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아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고 무익한 것은 무엇인가를 잘 분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더 나가 유익한 것들 중에 더 유익한 것은 무엇이고, 가장 유익한 것은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은 선택이다. 그런데 선과 악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갈등은 있으나 선택은 비교적 쉽다. 그런데 유익한 것들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갈등도 더 심하고 따라서 선택하기기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익한 것, 더 유익한 것,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두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키케로는 유익한 것들을 열거하면서 선의, 신의, 영예, 공정한 권리, 부드러운 논쟁, 웅변, 봉사, 호의 등등을 유익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것들이 상황에 따라 더 유익한 것, 가장 유익한 것들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키케로가 권리라고 하지 않고, 공정한 권리라고 기술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책임을 이행한 자에게 권리가 주어진다는 뜻이고 책임을 이행한 자에게는 누구든 차별 없이 같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공화정과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모든 구성원들이 책임과 권리가 일상화 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위해서는 먼저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만약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고 만다. 바로 이 점이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경종을 울리는 교훈이다. 만약 교인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그 교회는 결국 망하게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이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고 행동한다면 그 국가도 망하고 만다. 마지막 부분에서 키케로는 도덕적 선과 유익함이 서로 상충될 때, 즉 대립될 때,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 부분은 비교적 간단하게 기술되고 있다. 도덕적 선, 즉 의무를 먼저 택하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익함이 주어진다고 해서 의무, 즉 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덕적 선에 반하는 유익함이란 사실상 없다고 단정한다. 사람들은 당장의 유익함에 빠져 미래의 큰 유익을 잃어버리는 우둔함을 범한다. 소탐대실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케로는 나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도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덕 그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유익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는 명언들이 많다. “적합한 것은 명예롭고, 명예로운 것은 적합하다.” 이 말은 분수에 맞지 않은 것은 결국 불명예로 끝난다는 뜻이다. 능력은 없는 데 높은 자리에 않으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불필요한 사람은 추방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유익에 반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경고이다. “존경을 얻으려면 육체적 쾌락을 극복하고 외부상황을 사소하게 생각하며, 고귀한 목표를 수행해야 한다.” 이 말은 존경받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존경을 받으려면 우선 목표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겠다는 고귀한 목표에다 자신과의 싸움, 사회적인 비난을 극복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아들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유익하나 공공을 지키려는 전쟁은 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오늘날, 전쟁이 무서워서 북한과 무조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신앙, 자유를 지키려면 불가피한 경우 전쟁도 불사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키케로는 쾌락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쾌락이 육체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키케로는 간과했다. 개인주의가 절제되지 않으면 결국 모두 망한다. 현대는 개인주의로 질주하고 있다. 이러다가 언젠가 망할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고시영목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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